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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육 현장을 갔다

기사승인 [367호] 2019.09.20  09: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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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으로 돌아보다

   
 

과거 복지부 의뢰로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 곳을 ‘인간사육시장’이라고 단정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애인사육시장’인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그곳은 개인운영신고시설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미신고시설이라고 부른다. 종교의 탈을 쓰고 실제로는 장애인들을 가두고 사육하며 개인이 사리사욕을 챙기는 시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족들은 장애인을 내다버리고 있었고, 버림받은, 인권이 실종된 장애인들은 철조망이 쳐진 갇힌 공간에서 평생을 동물처럼 사육당하며 지내고 있었다.

2011년 9월 어느 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들이 한 미신고 시설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 시설은 경기도 평택시 외곽 인적 드문 산 속에 가려 있어서 외부에서는 시설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없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설 이름도 ‘00 선교 교회’라는 간판만 붙어 있어서 교회라고 짐작될 뿐, 처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시설 내부에 들어가 보기 전에는 이곳이 시설이라는 사실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곳에 수십 명의 장애인들이 수용돼 있었다. 시설 운영자인 유 아무개 자칭 목사는 이 자리에서 16년간 시설을 운영해 왔다고 했고, 한 때 70여 명의 장애인들이 수용돼 있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인원이 대폭 줄어서 27명의 장애인이 수용돼 있다고 했다. 이 시설은 특이하게 인터넷에 광고를 하고 있었다. 광고 문안은 ‘정신병 반드시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였다.

시설 측은 장애인들을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원생들과 일을 할 수 없는 원생들로 구분해 놓고, 20여 명이 넘는 원생들을 철조망 안, 곰팡이가 덕지덕지 피어 있고,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들이 있는 공간에 감금해 놓고 있었다. 이 철조망 안의 공간으로 통하는 외부 문은 하루에 딱 세 번, 식사 시간 때만 열렸다는 게 이곳 장애인들 얘기였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하루 일과는 철조망 안 조그만 운동장을 하릴없이 돌아다니거나, 종이에 성경구절을 베껴 쓰는 게 전부였다. 시설 운영자인 유 아무개 자칭 목사는 원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종이에 성경 구절을 베껴 쓰게 했다. 유 씨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장애인들이 영적으로 어두운 곳이 있어 장애를 가지게 됐고, 그래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성경 구절을 베껴 쓰는 게 훌륭한 치료방법이다”라고 강변했다. 유 씨는 지시를 거부하면 직접 몽둥이로 사정없이 원생들을 때렸다.

이 시설 안에는 눈길을 끄는 어머니와 아들이 있었다. 정신장애를 가진 어머니는 철조망 안에 갇혀 있고, 열 살인 아들은 철조망 밖 다른 공간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흡사 아프리카 난민캠프에 수용된 사람들처럼 격리된 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엄마가 아들을 안을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단 한 번, 일요일 예배 시간 때뿐이었다는 게 어머니의 얘기였다.

원생들의 식사시간, 장애인 예닐곱 명이 둘러 앉은 식탁에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반찬이 놓여 있었다. 반찬은 금방 없어졌는데 원생들은 아무 불평 없이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그 옆에서 자칭 유 목사가 한 원생에게 반찬을 그릇에 담아 먹는다고 “이 새끼 저 새끼” 라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장애인들에게 성경구절을 베껴 쓰는 일 외에 다른 치료를 받는 게 있느냐고 물어보자 장애인들은 “하긴 뭘 해요 약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거지”라고 대답했다. 자칭 유 목사는 “여기 원생들은 모두 ‘예수표’라고 하는 약을 먹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칭 장로교 목사라고 하던 유 씨는 정식으로 교단에 등록이 되어 있느냐고 물어보자 “없을 겁니다”라며 자신이 목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시설 내에는 감금방들이 있었다. 철조망 안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는, 안에선 문을 못 열고 밖에서 잠글 수 있도록 자물쇠가 채워진 방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유 씨에게 방들의 용도를 물어보자. “독방이 아니고 똥방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애인을 감금방에서 자게 하는 건 인권침해라고 따지자 유 씨는 “그게 인권침해라면 어쩔 수 없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시설 내 다수의 장애인들은 맞아서 생긴 게 분명해 보이는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상처에 대해 묻자 장애인들은 “맞아서 생긴 상처”라고 대답했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한 발달장애인은 “여기 감금돼 있는 장애인들은 항상 1백대 2백대 맞습니다. 안 때리면 일이 안 된다고 때립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시설은 수급비와 장애연금, 후원금, 그리고 가족들이 입원비 명목으로 내는 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은 모두 유 씨 호주머니에 들어갔다. 유 씨는 계획을 얘기하면서 “조만간 충북 괴산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괴산에 거액을 들여 땅을 사놨고, 거기서 다시 시설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유 씨에게는 시설 운영이 치부의 중요한 수단인 셈이다. 실제로 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들을 구출해내는 과정에서 유 씨 가족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며, “원생들을 모두 데려가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소리쳤다.

결국 평택시청 공무원들과 경찰 기동대까지 동원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던 장애인들을 모두 구출해 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장애인 미신고 시설은 아직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종교의 탈을 쓰고 선의로 위장한 채, 기도원, 사찰, 무슨 무슨 집이라는 간판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장애인들을 수용해서 사육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애인 미신고 시설이 존재하는 건 가족들이 장애인들을 시설에 내다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지금처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면 미신고 시설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한 건 이 시설 외에도 인권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무색한 사각지대가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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