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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장애인에게 선한 이웃은 없었다

기사승인 [371호] 2020.01.18  09: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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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으로 돌아보다

   
▲ 사진. 함께걸음 자료

많은 장애인들이 ‘현대판 달동네’인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그 벌집 같은 곳에서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13년 3월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60대 지체장애인 K 씨가 이웃 주민들에게 구타당한 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웃들은 K 씨의 기초생활수급비를 갈취하기 위해 수시로 그의 집에 드나들며 억지로 술을 먹이고 마구 때린 뒤 돈을 갈취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웃들은 K 씨를 찾아가 폭력을 행사했고, K 씨는 뇌출혈로 인해 숨졌다. 이 파렴치한 이웃들은 K 씨의 장애인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를 가로채 술값으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그 해 이와 유사한 이웃 주민들의 장애인 가해사건이 서울 노원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또 일어났다.

장애 2급인 한 아무개(당시 50세) 씨, 그는 17세 때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열차에 몸을 던졌고, 그로 인해 두 다리를 잃어 의족을 하게 됐다. 그는 서울 노원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으며, 수급권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아버지와 10살 위인 형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형제라고는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이 있지만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한 씨도 중증장애인이어서 노모를 하루 종일 돌보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었지만, 다행히 노모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주간 돌봄서비스센터에서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 살고 있는 한 씨에게 같은 아파트 내에 살고 있는 건달 둘이 접근해 왔다. 그들은 매일 한 씨 집에 찾아와 술판과 도박판을 벌였으며, 한 씨를 시도 때도 없이 구타했다. 이웃주민에 따르면, 건달들이 한 씨가 돈을 안 갚는다며 얼굴을 때려 치아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 한 씨의 통장은 동생이 관리했는데 건달들이 한 씨를 협박해서 통장을 찾아오게 했고, 한 씨가 술에 취해서 정신을 못 가눌 때 손에 돈을 쥐어주고선 돈을 빌렸으니 갚아야 한다는 식으로 속인 뒤 며칠 후에 빌린 돈을 갚으라고 폭행하고 집안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노원구청 사회복지 담당자가 나섰지만, 경찰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일이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건달들은 한 씨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주민들도 협박하고 때렸으며, 심지어 구청을 찾아가 담당자에게 가만히 안 두겠다며 위협을 가했다.

그 해 4월 말, 한 씨는 여느 날처럼 집에 들어와 술을 마시고 도박하던 건달들의 폭력과 횡포에 견디다 못해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이에 구청 담당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도움을 요청했고, 연구소 활동가들은 현장에 가서 한 씨를 치료한 후 긴급보호시설로 데려갔다. 이후 이사하고 싶다는 한 씨의 뜻을 반영해 SH공사 측에 긴급공문을 보내 한 씨와 노모에게 서울지역의 다른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후 쉼터에서 만난 한 씨에게 활동가들은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의사를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한 씨는 자신을 괴롭혀 온 이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자신도 함께 어울렸고 손목이나 부러져 빠진 치아 모두 자신의 실수로 다쳐서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왜 한 씨는 자신을 못 살게 군 건달들을 감쌌던 걸까. 한 씨에 따르면 첫 번째는 자신도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도박을 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고, 두 번째 이유는 한 씨가 학창시절 왕따를 당해서 혼자였는데 나이 쉰 살이 된 현재 역시 친구도 없고 가족이라고는 대화가 어려운 치매 걸린 노모뿐이기 때문에 홀로 외롭게 지내야 했는데, 너무 외로워서 괴롭히는 사람들이라도 누군가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것이 내심 반가웠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앞서 3월에 숨진 K 씨도 한 씨와 마찬가지로 홀로 지내왔고 외로움 때문에 이웃들의 행패를 묵과해왔다고 한다. 심지어 K 씨는 사망 전날 자신을 괴롭히던 이웃에게 수십만 원을 건네면서 자신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영구임대아파트 특성상 K 씨나 한 씨처럼 혼자 사는 장애인이 많다. 그렇지만 살펴 본 것처럼 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망이 부재한 게 현실이다. 지금도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이웃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많을 텐데,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태곤 기자 cowalk1004@daum.net

<저작권자 © 함께걸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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